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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은 1975년~1987년까지 당시 전국 최대규모의 부랑아 수용시설이었던 부산형제복지원에서 12년간 일어났던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1987년 3월22일 직원들의 구타로인해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집단탈출하면서 형제복지원 실체가 드러난것입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형제복지원은 수천명에 달하는 무연고 장애인과 고아, 노숙인등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고 노역 폭행하였습니다. 특히나 형제복지원이 운영되었던 시기는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 이유로 전국 부랑자 단속이 가장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사건에 연루된 혐의자들이 공권력을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11월 27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 이 자리만으로는 부족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회복되길 바라며 피해자와 피해자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인권유린 사태가 다신 발생치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당시 왕처럼 군림하였으며 충성만하면 여자 원생들을 강간, 성희롱, 성폭행을 해도 아무도 터치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1989년 9월14일에 2년 6개월형을 받았으나 이미지 세탁후 개신교 집사가 됩니다. 또한 형제복지원을 이름을 바꿔 운영하게 되는데 2014년 느헤미야라는 이름으로 형제복지원 박인근 아들이 운영, 셋째아들은 실로암의집을 만들어서 운영했습니다.




또한 지난 4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의혹으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조사했었습니다. 당시 부산지검장이었던 박희태 형제복지원 수사외압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형제복지원 박희태 전 의장은 기억못한다고 잡아뗐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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